고려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국학(國學)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뒤 1492년(성종 23)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도덕산(道德山) 두덕암(斗德庵)으로 옮겼다가 1600년(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환안(還安)하였다
황리단길
고려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국학(國學)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뒤 1492년(성종 23)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도덕산(道德山) 두덕암(斗德庵)으로 옮겼다가 1600년(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환안(還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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