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90년(선조 23) 그의 문인 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변이중(邉以中)등 호남 선비들이 장성읍 기산리(岐山里)에 창건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1624년(인조 2) 호남 사림들의 노력으로 기산리 서쪽 증산동(甑山洞)으로 자리를 옮겨 복설하였다.

이후 1672년(현종 13) 증산동의 지대가 낮아 물난리로 흙다리가 위험해지는 등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어

지금의 자리인 해타리(海打里)로 옮기고 마을 이름도 필암리(筆巖里)라 하였다.

1658년(효종 9) 전라도 유생(儒生)들이 사액(賜額)을 소청(疏請)하여, 1659년(효종 10) 3월 윤허(允許)를 입었다.

1662년(현종 3) 현종이 어필로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 선액(宣額)하고, 예조정랑 윤형계(尹衡啓)를 예관(禮官)으로 보내 유제(諭祭)하였다. 이후 사액(賜額) 서원으로서의 규모와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름을 필암(筆巖)이라 지은 것은 그의 고향 맥동 마을 입구에 '붓처럼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 하며, 바위에는 병계 윤봉구의 글씨인 『筆巖』이 각자되어 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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